기타/42서울

[42서울 5기 1차] 라피신의 4주차 마지막 후기

레에몽 2021. 10. 12. 15:50

 마지막 주가 밝아왔다. 같은 피시너끼리 항상 "우리 클러스터 몇 번오면 끝나요!"라고 얘기하며 장난을 쳤었는데 이제 장난을 치면 아쉬움이 남는 주가 되어버렸다. 3주 동안 생각보다 많은 정을 콸콸콸 쏟아버렸다. 새벽까지 개더 타운에 모여서 개인 진도를 나가고 사담을 나누던 게 곧 끝난다는 말이 내 일상이 없어지는 것처럼 섭섭했다. 특히, 개더 타운에서 춤추면 10명 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아이돌 대형을 서서 춤추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러다 보면 몇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4주차에서 나는 개인 진도를 원하는 목표만큼 나갔었기에, BSQ팀플과 기존에 시험에 나왔던 것을 정리하면서 시험 대비를 했다. BSQ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실행이 조금 걸리지만 이론적으로 우리는 생각보다 큰 숫자인 40억 x 40억까지 커버할 수 있었다. 함수와 파일을 기능별로 나누다 보니 코드의 가독성도 좋아져서 정말 만족스러운 팀플이 되었다. 제일 중요했던 부분은 역시 코드의 처리를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던지라, 디버깅을 최대한 많이 했다.

 

 화요일에는 슬슬, 모든 사람들이 집에 가기 싫어하는게 보였고 마지막 시간대에는 평가를 잡기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8시쯤부터 들려오는
"혹시 평가슬롯 열어주실 분 있나요?" 소리는 모든 사람들이 뻐꾸기 마냥, 다 같이 외치면서 서로의 평가를 잡아주었다. 나는 항상 낮에 주로 내 평가를 받고, 다들 급해 보이는 밤에 평가 슬롯을 열었던지라 저녁 먹고 나서는 자리에 거의 없었다. 근데 밤에 평가하러 가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조급해하는 게 보인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개인 진도를 대신 나가줄 수는 없다. 목요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드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주가 되니까 괜스레 감성이 터졌는지, 오지랖이 넓어졌는지, 모든 사람들이랑 이 라피신을 끝내고 본과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시험 문제에 나왔던 것을 정리하면서 스터디도 해보면서 마지막 주는 다른 사람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생각보다 컸다. 사실 개인 진도를 더 나가기 무서웠던 것도 있다.

 

 목요일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실감이 난다. 오늘로서 피시너의 클러스터 생활이 끝이 난다. 내일 시험이 되면 피시너의 생활이 끝이 난다. 나는 BSQ의 평가를 잡고, 목표한 개인 진도를 다 나갔었기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타임 슬롯을 많이 열어두었다. 그러다 보니 네임드 분들의 BSQ를 잡았었는데 코드 자체가 되게 재밌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함수명과 변수명이 개인적인 성향을 나타내서 그런지 직관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보이는 코드가 재밌었던 것 같다. 

 

 내가 했던 BSQ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Big Score Quest(ion)으로도 불리는 만큼 점수가 컸다. 사실 제일 컸던 것은 3번의 러쉬가 모두 0점이라는 점이다. 팀플을 했는데, 점수를 받지 못했었던 것은 왠지 모르게 자존심의 스크래치가 났던 것 같다. 점수를 못 받은 이유가 명확해서 따로 억울함은 없었다. 더구나, 코드의 스타일이나 습관을 확실히 바꾸면서 개발자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0점이 중요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 덩어리로 계속 있었나 보다. 이번 BSQ에서는 정말 오류가 날 부분이 없었다. 케이스란 케이스는 다 조사해봤다. 모두 다 된다. 정말 잘 된다. 그리고 남들보다 큰 사이즈까지 할 수 있었기에 괜스레 뿌듯했다.

 

 하지만, 결과는 0점이다. 기계채점에서 0점인 이유를 파악했지만, 나는 이 코드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조건을 제외하면 모두 다 OK가 떴었고, 기계가 0점을 준 이유는 정말 사소한 거였다. 이걸 맞을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소한 거였고 틀리기 좋았다. 그래서 모든 팀플을 0점으로 끝낸 나는, 팀원 분과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은 마지막 시험을 잘 보자는 얘기였다. 마지막 시험도 배점이 되게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험은 만족스럽게 봤던지라, 마지막 시험도 나름 자신있었다. 동료평가가 중요한 42 서울에서 팀플의 점수를 한 번도 못 받은 것이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도전"이라는 행위에 만족한다. 팀플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은 없었다. 기계가 준 점수는 0점이지만, 프로젝트가 내게 준 열정과 보답은 100점 그 이상이었다. 새벽까지 팀플을 하기도 하고, 팀원분들이랑 맞는지 아닌지 검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너무 많았다.

 

 목요일 저녁으로 갈수록 너무나 답답했다. 계속 평가를 다니지만, 동료 평가를 진행하면서 코드의 반례가 보일 때는 정말로 답답했다. 이 실수로 인해서, 원하는 목표를 못 끝낼 수도 있어 보이는 분들이 많아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동료평가를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마지막을 찝찝하게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녁은 맛있는 것을 먹었다. 정말로 맛있는 것을 먹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맛있는 것들만 골라서 다 드셨다. 어느덧 쓰레기통에서 보이는 박스와 포장용기들은 평소 보지 못했던 음식들만 쌓여있었다. 다들 그렇게 맛있는 것만 먹은 걸 보니 또 재밌었다. 모두 마지막이 슬퍼서인지, 좋아서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뜻깊은 날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저녁을 먹고 와서는 다들 평가 평가 평가였다. 슬랙에서도 평가 얘기로만 가득 차있다. 모든 사람들이 평가를 했을까라고 걱정을 하던 무렵,  몇명의 사람들이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코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지가 많이 되었어요", "같이 팀플했던 경험에서 성장할 수 있었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어요", "같이 본과정에서 꼭 밥 한 끼 해요" 등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감이 나버렸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라피신이 정말 소중한 기회일 것이다. 신청 당시에 전공자인 내 입장에서는 42 서울은 하나의 대외활동이지만, 비전공자인 그들에게는 하나뿐인 기회다. 똑같이 지원금을 받는 소마나 싸피는 비전공자가 들어가려면 엄청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42 서울에서도 그 벽이 있겠지만 동료평가가 있어서 벽을 같이 부술 수 있던 것이다.

 

 나도 42서울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 42 서울이 있었기에 번아웃 상태였던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지원금 100만 원을 받고 싶어서 지원을 했던 건 사실이나 지금은 다르다. 라피신에서의 기억이 앞으로도 계속 내 발판이 되어 뛰게 도와줄 것 같다. 아직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 남았지만,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운 게 많다.

 

 코로나로 10시까지밖에 클러스터에 못있었던지라, 9시 50분이 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다. 평상 시라면 다들 집에 가려고 우르르 나갔겠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다들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계속 찍었다. 정말로 계속 찍었다. 걷다 보면 사진 찍고 걷다 보면 사진 찍고 지하철 타기 전에 사진 찍고 재밌었다.

 

 마지막 시험 날에는 아침 일찍 나와서 카페에 먼저 가서 조금의 공부를 했다. 소정의 선물을 준다길래 가방도 챙겨왔다. 근데 소정의 선물이 소정이 아니었나 보다. 가방을 가져왔지만, 내 두 손은 어느새 가득 돼버렸다. 선물을 받은 상태로 기분 좋게 시험 자리에 착석했고 시험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했던 시험 중에서 제일 실수가 많았다. 안틀려도 될 것을 틀리는 경우가 많아서 내 터미널 창에는 빨간 줄이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쭉 가다가 내가 어려워했던 문제와 비슷한 유형이 나왔다. 어려웠다.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힘들었다. 그 문제에서만 2시간을 가까이 썼다. 정말 지쳤을 때 이게 안되면 도중에 포기해버리자라는 마인드로 제출을 했다. 그랬더니 그 문제를 통과했다. 세상 제일 짜릿했다.

 

 뒤로 갈수록 문제에서 생각하는 요소가 많아졌다. 근데 생각보다는 쉽게 풀렸다. 그렇게 마지막 문제만 눈 앞에 놔두었다. 나랑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먼저 내려갔던지라, 나도 얼른 끝내고 내려가고 싶었다. 문제를 봤을 때 어? 이거 옛날에 C++로 알고리즘 할 때 했던 것 같은데 싶은 게 나왔다. 근데 C로 구현하려니까 막막했다. C++로도 잘 안됬어서, 인터넷에 있는 코드를 보면서 겨우 겨우 연습했던 기억이 생각났는데 남은 시간이 많이 없었다.

 

 1시간 정도 남은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마지막을 불태울 것인가 아니면 현재 성적에 만족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마지막을 불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틀렸던 문제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틀렸을 때 적으면서 했던 나는 주어진 A4가 가득 찼다. 수학적 요소가 가미되었던 마지막 문제였기에, 암산으로 하기에는 내 머릿속이 과부하가 걸렸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1시간 정도 남은건 아쉽지만, 밖에 나오니까 공기가 상쾌했다. 이것이 서울 강남 공기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분들은 카페에 있다고 해서 거기로 갔다. 시험 100점을 맞은 사람도 있었다. 참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게 서로 시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고생했다는 말을 하면서 하루가 끝이 났다. 아니 라피신이 끝이 났다.

 

 

 

 

 라피신이 끝난 지금 학교 수업에 벅차지만, 후기글을 꼭 작성하고 싶었다. 티스토리 블로그는 방치한지 오래돼서 옛날 글을 보니까 수치스럽지만, 여기에 작성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해주었으면 좋겠다. 모두 다 라피신에서 배운게 많았으면 좋겠고, 원하는 결과를 받길 바란다.